06/09/2019
잡다한 이야기
김혜강 씨가 생각이 약간 복잡한 모양이다. 8월 초순에 다 만든 경제 관련 영상도 올리지 않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의 자료를 열심히 뒤져서 올해 상반기 경기침체, 소득양극화 등에 대해 조사하고 만들었는데 아직 게시하지 않고 있다. 그것 말고 글도 몇 개나 써놓고 이곳에도 올리지 않고 있다. 김혜강의 이 페이스북 관리는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 파악도 할 겸 미리 소통도 할 겸 일종의 몸풀기 차원에서 맡은 것인데 뭔가 생각과는 다른 면이 조금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두서없이 그냥 정미홍 대표 얘길 해볼까 한다. 어차피 여긴 ‘정미홍의 가치캠프’니까.
언론은 정미홍이 막말을 잘한다고 했지만 그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표현을 달리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체의 직원이나 가까운 후배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 특징이 있는데, 여성 후배에게는 성을 빼고 호칭했지만 남성 후배에게는 대체로 성과 이름을 모두 불렀다. 예컨대 심순애라는 후배 여성에게는 ‘순애 씨’라고 하고 홍길동이라는 남성에게는 ‘홍길동 씨’라고 불렀다. 열다섯 살 적은 나에게도 늘 성과 이름을 함께 불렀다. 한편 그는 여성이라도 선배에게는 성을 꼭 붙여서 호칭했다.
나는 한국 사회의 발전 저해 요소 중 하나로 ‘말’을 꼽는 편이다. 언어에서 상하 구별이 너무 심하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계급투쟁적인 면이 많아지게 된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런 인식을 가져서인지 나보다 연하인 사람들에게는 나에게 말을 되도록 편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그러나 연장자들에게는 우리 관습과 예법에 맞게 표현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나도 여성에게는 이름만 호칭하지 않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후배 여성일지라도 결혼을 한 이에게는 반말을 하지 않았다. 정미홍과 내가 대화할 때는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거론하더라도 그 사람의 이름만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미홍은 좌파나 적대적인 이에 대해선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반감을 뚜렷이 표출했다.
정미홍은 클래식음악이나 재즈를 좋아했는데, 의외로 젊은층이 듣는 일렉트릭 음악도 좋아했다. 음악에 대해 소양이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내가 음악방송 DJ를 한 몇 년 했다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그때 선곡 직접 하시는 거 아니었지요?’라고 물으니 이따금 직접 선곡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미홍은 여성치고는 자동차나 스포츠에 관해서도 아는 편이었다. 내 생각엔 그가 자동차, 요트, 호화주택, 영화 같은 것을 소개하는 그런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속된 표현으로 돈이 되는 방송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오로지 애국방송을 해야겠다고 고집했다.
진정방송 게시물 중에 ‘황진이’라는 게 있다. 탈북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인데, 그 중 북한의 性관련 이야기를 담은 것은 2년 전에 100만회 이상 조회되었다. 자기 방송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좋아할만 한데, 정미홍은 개탄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그런 프로에는 조회수가 얼마 되지 않고 性 관련 이야기에는 조회수가 매우 높아서 그렇단다.
그는 돈 많은 사람도 많이 알고 있었다. 보수우파로서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는 자신이 이끄는 단체에 후원금도 그럭저럭 들어왔고 격조 있고 돈 되는 행사에도 자주 불려갔다고 했다.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과 모임도 많이 했는데 보수우파 활동을 하면서 다 날아갔다고 했다.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라고 거울을 보며 껄껄 웃었다.
재벌급 되는 이름 있는 이도 많이 알기에 ‘그런 사람들은 보수적 아닙니까’라고 물었더니 무심코 ‘그렇죠’라고 했다. 그런 분들이 후원 좀 해주지 않느냐고 물으니 ‘대개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은 좌파 시민단체들 같이 자기네에게 해코지 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잘 준다’고 했다. 덧붙여 돈 많은 이들은 보수우파 활동하는 것을 천하게 본다고 했다. 자신에게 도리어 ‘미홍이 니가 왜 그런 사람(보수우파)들과 어울리니’라고 한다 했다. 정미홍이 보수우파 활동을 할 때 후원해준 분들은 대개 서민으로 보이는 그런 분들이었다. 돈 많은 이가 후원해온 경우는 내가 알기론 거의 없다.
한 번은 정미홍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겨울 태극기집회 때 행색이 남루한 어떤 할머니가 악수를 청해와 손을 잡아드렸는데, 손을 놓고 보니 자신의 손바닥에 접혀진 5만원짜리가 있더란다. 손이 얼어 있던 터라 감각이 없어서 순간 돈을 주고 간 것도 못 느껴서 얼떨결에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 할머니가 애절한 눈빛으로 ‘우리 박근혜 대통령 좀 살려 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 ‘도대체 박 대통령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서민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정미홍은 점점 서민들 마음에 기울었다.
정미홍 주변에는 유능한 분, 성공한 분이 많았다. 정미홍은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았으나 열등감도 없었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지식인 사이에서는 이화여대라는 곳이 영 별로였던 모양이다. 한 번은 정미홍 주변 사람이 농담처럼 ‘58년생들이 대학갈 때 이화여대 법학과는 아무나 가던 곳’이라고 했다. 이런 말에 정미홍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대신 자신은 학교 다닐 때 거의 장학금 받고 다녔다며 당당해했다. 과거 스펙보다는 오늘의 실력이 우선되는 사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미홍은 지난 탄핵에 앞장섰던 모든 이들이 대부분 최고대학을 나온 이들이라고 비꼬았다. 기자, 검사, 판사. 다들 이 사회 엘리트들인데, 역적질은 가장 많이 한다고 말했다. 많이 배워도 머리가 썩어서 태극기 든 어른들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요즘 조국 때문에 시끄럽다. 그를 두고 위선자라고 난리다. 정미홍은 살아오면서 겪은 유명한 이들 다수에게서 조국 같은 그런 면모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지식층 특히 언론계 유명인들에 관한 위선 얘길 자주했었다.
내가 아는 정미홍은 노력파이다. 그는 KBS 시절부터 언젠가는 자신이 기획, 연출,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을 가지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때는 새벽에 영어공부를 하고 매일 주류신문 사설 몇 편을 정독하고 그 중 어려운 한자를 외우고 썼다는데, 그런 사설을 본보며 작문 연습도 했다고 한다. 덕분에 서울시에 있을 땐 홍보물 및 시장님 연설문 등을 모두 자신이 작성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정미홍은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게으르거나 실무에서 멀어지면 무능력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직원들은 대체로 부지런했다. 또 재주도 많았다. 내가 알기로 정미홍의 비서라고 알려진 그 여성도 굉장히 글 솜씨가 좋다. 나름대로는 군소 일간지에 칼럼도 기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젠 다 그만뒀겠지만 그 여성 말고도 다른 젊은 여성 하나도 글재주가 좋다고 한다. 파워블로거라고 들었다. 그 두 여성이 소책자 하나는 금방 뚝딱 만든다고 그랬다.
사실 나는 그 여성들에 비해서도 잘하는 게 없다. 아마 정미홍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과장 없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지금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뭔가 홀린 기분이다.
전에 정미홍은 나더러 함께 방송을 진행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된다고 하였다. 나에겐 그런 자질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살면서 기자, 법조인, 정치 쪽에 있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주류신문 기자들 중에는 4~5급 공무원쯤은 우습게 여기는 이가 많다. 검사들끼리도 누구누구 검사는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다. 법조인 중에서는 서울대가 아닌 고려대 법대를 나와서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것에 콤플렉스를 가진 이도 보았다. 세상 현실이 그런 판에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무슨 방송 보조 진행을 하겠나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정미홍은 ‘국가보안법 전과자도 TV에 나와서 활개 치는 세상인데 뭘’이라고 했다.
정미홍 대표가 떠난 지금 TNJ라고 해봐야 실상 이름뿐이지만 그래도 3명이 그 이름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여성 둘 남자 하나이다. 모두 47세 이하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미홍이 떠나고 어떤 사람이 TNJ를 맡아야 적합할지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사실 정미홍이 있을 때도 TNJ는 별 내세울게 없었고 조회수도 높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미홍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런 판에 그가 떠나고 별 것도 아닌 이들이 진행할 경우에는? 솔직히 김혜강도 나도 앞으로 TNJ에 많아봐야 5천명이라도 들어올지 의문이다. 그래도 고인이 간절히 원했던 바가 있으니...
일단 서민과 여성을 겨냥한 방송이어야 하고 여성이 진행해야 한다는 전제 아닌 전제를 세웠다. 풍부한 지식을 가졌기보다는 난세에 어울리는 ‘내면의 결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운동권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운동권 출신은 아무리 전향했다 하더라도 타고난 천성, 기질 자체가 정미홍 같은 사람과는 다르니까.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고 50세 이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덕도 좀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성함을 거론해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는데, 김미영 선생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분은 TNJ가 만들어질 때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이미 정미홍 선생 이상으로 인지도가 높고 하는 일도 많다. 껍데기만 남은 아무것도 아닌 TNJ를 떠안을 작은 그릇이 아니었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김혜강, 라니 김이라는 여성과 도모하기로 했다. 예전에 정미홍은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보수우파 이념서적’을 읽도록 강제했다. 그 소릴 듣고 엄청 웃었다. 그거 완전 고문일 텐데 싶었다. 그랬는데, 나 역시 그렇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10개월 가까이 각종 사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조율했고 대부분 일치하게 되었다. 세대 차이에서인지 사유방식 차이인지 우리는 큰 틀 내에서 정미홍 대표와는 생각이 다른 점이 2가지가 있는데, 그 부분은 TNJ 및 ‘정미홍의 가치캠프’에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김혜강은 이런 식의 운동에 관한 방법 문제에서 생각이 많은 것 같고 라니 김은 며칠 전 갑자기 정치 평론 말고 다른 평론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트루먼 얘기, 레이건 얘기, 트럼프 얘기 같은 거 하면 잘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인데...
여기다 별 소릴 다 적는다만, 대통령 구속이후 어떤 것을 먹어도 맛이 없다. 여행 한 번 가지 않았다. 내가 이런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아는데, 올여름 가족 여행에도 빠졌다. 구속되어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어떤 흥도 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할까봐 혼자만 생각하고 있지만...
싱거운 소리 해보았다. 두서가 없다.
TNJ
김예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