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6/2024
✍[편집자 독후감] 말은 못해도 뭔지는 다 알잖아요?
안녕하세요. 『운명론』 편집에 참여한 "칠호"입니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님이 『운명론』에 관해 간략히 요약해 주셨네요. 기사에서 짚어준 것 중에 저는 경로 이탈 운동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흔히 클리나멘(clinamen)으로 불리는 '경로를 이탈하는 물질'은 루크레티우스를 비롯한 에피쿠로스학파에서뿐만 아니라, 알튀세르나 들뢰즈 등이 언급한 이래로 현대 철학에서도 적잖이 회자되는 편입니다.
개인이 의지를 갖고 하는 행동마저도 과학적, 사회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하는 설명(프로파일링이라든지..)을 보다 보면, 가끔은 주어진 조건이나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개인에게 있는지, 애초에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은 한지 의심스럽습니다. 다 타고 나는 것이고 세상은 안 바뀐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현대판 운명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려면 자유의지가 그런 조건과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클리나멘이 바로 그런 시도이겠지요. 일정한 움직임을 하던 물질들을 클리나멘이 건드리면서 이리저리 흩어놓는다는 설명은, 물질 구조와 같은 강한 인과 관계 안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제법 괜찮은 설명 방식 같은데, 키케로는 클리나멘 아이디어가 운명론에 "한 방" 먹였다는 것은 인정해도 이 설명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경로 이탈은 우연이고 우발이지, 자유로운 선택은 아니라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무작위적인 선택을 보고 자유의지라고 하지 않지요. 또 우리의 자유의지를 마냥 물질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도 어색하긴 합니다.
키케로는 이처럼 운명론자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설명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석연찮음, 다시 말해 누구나 '대개' 받아들일 수 있는(「작품 안내」 160쪽) 직관에 기초에 설득하고 있습니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자유의지가 뭐라고 똑부러지게는 말 못해도, 그게 뭔지 다들 느끼고는 있잖아?"
➕[더 읽어보기]
키케로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 루크레티우스도 아마 할 말이 많을 텐데, 저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2012)를 언젠간 읽어 보겠습니다.
운명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이상인 옮김 l 아카넷 l 1만 4000원 기원전 1세기의 로마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는 고대 그리스 철학 정신이 라틴어로 옮겨가는 데 통로 구실을 한 사람이다. 키케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