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2024
[〈FILO〉 40호(2024년 9/10월)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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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신기하죠. 제가 느끼기에, 어떤 움직이는 로르샤흐테스트[잉크반점검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카메라가 포착하는 나무숲이 크게 좌우대칭으로 펼쳐져 있어 은은한 섬뜩함이랄지, 생각이 서린 듯이 느껴져요. 한편으로 그것을 깨트리는 무작위성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갈마들어서, 역시 오래 잡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보여요. 보다보면 스스로의 상념이 끄집어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기분좋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다시금 동기화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미야케 ― 이는 ‘목격한다는 것’ 그 자체를 맛보게 하는 숏이 아닐지요. 사람은 대체로 영화든 실제 삶에서든 무언가 목격하고 나면 의미를 사유하고 해석하는데. 이 숏은, 뭐랄까, 미우라 씨가 말씀하신 로르샤흐테스트처럼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바를 느끼게 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어떤 하나의 의미로 정착하기를 회피하며, 역시 ‘목격한다는 것’ 그 자체, 그런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합니다. ‘목격’에 그치게 해주는, 그러니까 해석으로 가기 전에 머물게 해준달까요. 혹은 여러 갈래의 해석을 경유하는 동시에 그것을 튕겨내듯 ‘목격’으로 데려가준다고 말하면 될지 잘 모르겠는데요.
하마구치 ― 그러게요. 이 화면, 계속 보다보면 조금 예측이 가능해요. 나뭇가지의 이 레이어와 저 레이어가 겹쳐져 이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면서요. 그대로 되기도 하지만 ‘헉’ 하는 레이어가 화면 밖에서 불쑥 들어오는 등 다 짐작할 수가 없어요. 편집하며 못해도 백 번 정도는 본 듯한데, 그때마다 허를 찔렸죠. 편집상 짐작하기 쉬운 나뭇가지들을 기점으로 리듬을 만들긴 했습니다. 나아가 후반 작업에서는 음악을 어느 타이밍에서 맞출지 하는, 나뭇가지와 음의 레이어 같은 것도 있어, 그게 잘 맞아떨어져 고조될 때도 있고, 어긋나 잠잠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고조됨’과 ‘잠잠해짐’이 반복되는 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 반복이 목격의 감각 같은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오늘도 좀 잊어버렸을까봐 PC로 다시 보고 왔는데요......
미야케 ― 어땠어요?
하마구치 ― 보면서 또 ‘아아, 이런 식이었지’ 하고 대책 없이 허를 찔렸어요. 스스로 허를 찔리러 간다고 해야 하나. 허를 찔리는 쾌락이란 게 있더군요. 근데 정말 기쁜 일입니다, 자기 영화를 보며 이런 기분이 든다는 게요. 물론 배우의 연기에 다시금 놀라기도 하는데, 이만큼 짧은 텀으로 다시 봐도, 몇 번이나 놀랄 수 있는 체험이란 좀처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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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미야케 쇼×미우라 데쓰야. ‘영화로 ‘목격한다’는 것: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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