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2/2024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었습니다.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의 전 세계적 확산 위험을 인식시키기 위한 날입니다.
여전히 감염은 개인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여겨지고, 감염병에 걸린 사람 개개인은 질병 그 자체보다 낙인과 싸워야 합니다. 『휘말린 날들』은 어쩌면 그런 낙인이 가장 공고하게 찍혀온 HIV/AIDS를 바탕 삼아 이같은 문제들을 다시 돌아보고자 제안하는 책입니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인 서보경은 ‘앞줄에 선 사람들’, ‘먼저 휘말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HIV 감염인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혹은 숨거나 도망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염이라는 사건을 한발 앞서 겪은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불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숨겨진 상실과 함께 나누지 못한 애도의 기억, 그리고 어떻게 다른 세상을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대담한 통찰이 깃들 이 이야기들을 문화기술지의 형식,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스스로 마주하고 겪어온 경험들을 경유해 길어냅니다. 그럼으로써 감염이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일’임을, 그리고 우리의 존재 조건임을 논파합니다.
자신 역시 “앞줄에 선 사람들에게 휘말리면서 직업으로서 인류학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서보경 작가님의 『휘말린 날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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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에 관한 이야기에는 온갖 차이를 가로질러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힘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숨겨지고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고난과 슬픔을 들려주는 동시에 더 이상 숨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제 숨지 말고, 홀로 사라지지 말고, 함께 있자고 청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기쁨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은 서로 다른 것들이 마주 닿아 번지는 일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자아의 좁은 틀을 벗어나서 타자에게 나아가는 감염력이 있다.
이 책에서 에이즈는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정체성의 소중한 토대이자, 의료의 당면 과제이자, 일상적 성적 실천의 현실적 일부이자, 새로운 이론적 기획의 돌파구로 구체화된다. 그 시작은 HIV의 처음을 다시 쓰는 것이다. _32~33쪽
🏷️에이즈는 ‘문란하고 난잡한’ 사람들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동성애자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마약 중독자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성노동자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특정 위험 집단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누군가’의 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HIV 감염 이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생겨나는 병이다. 만약 누군가 HIV에 감염했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HIV라는, 양성 단일가닥 RNA 유전체가 증식 과정에서 이중가닥 DNA로 변형되는 레트로바이러스의 한 종류가 감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성서와 신화 속의 악마나 괴물이 아니라, 비둘기나 고양이, 꿀벌이나 소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에서 ‘처음’의 자리에 서게 된 ‘특별한’ 사람들은 모두 이걸 말하고 있다. 왜 이 질병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발현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감염한 사람 너머를 보라고 말이다. _75~76쪽
🏷️당신이 아무리 HIV에 감염한 사람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몸은 언제나 이미 감염한 몸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지금 당장 직접 닿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감염이라는 작용이 매개하는 생명의 의미망 속에 늘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우리는 들이마시고, 만지고, 맛보고, 삼키고, 내뿜고, 그러므로 서로 드나든다. 서로의 몸에 가닿는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고, 피부에 스치지도 않지만, 그래도 서로 휘말리고 있다. _389~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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