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2024
”사계절 필수 준비물은 물, 깔개, 보조배터리, 여행용 휴지다. 그리고 나는 집회장 앰프의 굉음을 못 견디기 때문에 귀마개도 언제나 준비해 가지고 간다(앰프 굉음을 계속 들으면 난청 생길 수 있다). 귀마개는 3M 주황색이 최고다.
시위, 집회는 야외 활동이라 최대한 편한 신발을 신고 날씨에 맞게 대비해야 한다. 여름에는 쿨토시와 모자, 양산 등 햇빛 가리는 도구가 꼭 필요하고 땀 닦을 수건, 선크림, 냉동한 아이스팩도 있으면 좋다. 겨울에는 핫팩과 여러 가지 방한 장비가 필수다.“
오늘 서두에 인용한 글은 정보라 작가 『아무튼, 데모』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제가 입사한 3월 첫 주에 공교롭게도 『아무튼, 데모』의 데이터 마감이 있었어요. 표지 시안을 확정하고, 담당 편집자가 뒤표지에 들어갈 글을 고르는 단계였지요. 전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원고를 읽고, 부푼 가슴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입사 첫 주를 보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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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저에게 첫 조카가 생긴 이후로 제 안의 화두는 ”이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였어요.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도 없고, 온실 속 세상만 보여주려 가둬 놓을 수도 없을 테니까요. 때때로 지저분하고 잔혹한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잘 잡을 줄 아는 한 명의 시민으로 자라게 하려면 이모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었죠.
열흘쯤 전에는 저에게 둘째 조카가 생겼습니다. 기쁜 소식이죠! 작고 말랑하고 연약한 신생아 사진을 보면서 연말에 그 아이를 보러 갈 생각에 들떠 있었어요.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실내에서 귤도 까 먹고, 떼 쓰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기 냄새도 좀 맡고요.
그런데 이번 주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 때문에 아주 무서워졌어요. 아마 조카를 보러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엄, ’처단‘이라는 비상식적인 단어들로 인해 많은 분들이 잠도 못 이루고 뉴스를 보고, 또 직접 국회 앞에 나섰죠. 집회, 결사, 언론, 출판의 자유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 행위까지 통제하려는 그 발상은 제가 사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도 저는 (다들 그러실 것처럼) 일에 완전히 집중할 수가 없고, 잠깐씩 짬이 날 때마다 뉴스 속보를 봅니다. 상황이 계속 급박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처럼 뉴스를 열심히 챙겨본 적이 2016년 겨울 이후로 또 언제일까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저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제 다음 세대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살기 싫은 나라‘와 ’살 수 없는 나라‘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또 미래의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시위에 나가보려 합니다.
오늘 올리려던 『짐승과 인간』 북펀딩 관련 게시글 대신 『아무튼, 데모』를 인용하는 글을 올리게 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여러분,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주세요. 물과 보조배터리와 핫팩을 챙겨서 편하고 따뜻한 복장으로 국회 앞에서 만나요.
그리고 다치지 않고 모두 집에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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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어지럽거나 눈이 침침해지거나 말이 잘 안 나오는 경우, 손발에 감각이 없는 경우 즉시 냉난방이 되는 실내에 들어가 쉬어야 한다. 집회보다도, 그 어떤 의제보다도 생명과 안전이 언제나 최우선이다.“